인문학자들은 인생은 명답을 찾는 것이지 정답은 없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문제를 냈다. 1더하기 1은 무엇인가? 대답은 2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질문은 침팬지에게 4년 동안 한글을 가르친 후 가장 먼저 한 말이 무엇일까?
그 대답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은 것이 [나를 놓아주세요.] 라는 대답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명답과 정답의 차이는 무엇일까? 전자는 정답이고 후자는 명답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 명답은 질문에 잘 어울리는 답변이며, 정답은 질문에 옳은 답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질문에 대하여 옳고 그름이 분명한 것은 정답과 오답으로, 그렇지 않은 것은 잘 어울리는 명답과 사실과는 거리가 먼 동떨어진 우답으로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질문에는 명답이 필요할까 정답이 필요할까?
서울에 가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기차로, 버스로, 비행기로, 승용차로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도구를 통해서 갈 수 있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명답이다.
그러나 천국에 어떻게 갈 수 있는가? 에 대한 대답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으로 갈 수 있다.]고 대답하는 것이 정답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질문 특별히 구원에 대한 질문은 명답이 아니라 정답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요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조차도 구원에 대한 질문에 정답이 아니라 명답을 찾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