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사랑과 이해의 대상

사랑과 이해의 대상

사람들에게 '+'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면 각각 자기의 관점에서 표현할 것이다.수학자는 ‘덧셈’이라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말할 수 있다.그리고 성직자나 성도들은 '십자가'라 할 것이고 교통경찰은 '사거리'라고 할 수 있다.하나의 표시를 두고 이렇게 여러 가지로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자기가 알고 있는 상식, 자기에게 익숙한 습관, 자기가 배운 지식에 따라서 말하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가 말하고 표현하는 것을 두고 한마디로 '틀린 것‘이라고 단정 짓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다를 뿐’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다르다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매사에 비판하고 정죄했다. 그래서 드디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이 되고,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받아야 할 사랑과 이해의 대상으로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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